용문사(龍門寺)

    승려 두운이 바위 위에서 용을 영접했다는 데서 유래, 즉 용이 문을 열어준 사찰이라는 의미

    예천군 용문면 용문사길 285-30
    예천 버스터미널 '두천'행 승차 -> 용문사 하차
    소백산 하늘공원, 금당실마을 / 삼일식당(따로국밥), 박달식당(순대국밥)
    템플스테이 운영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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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 연혁

    - 통일신라 경문왕 10년(870년) 승려 두운이 당나라에서 귀국 후 ‘용문사’라는 이름으로 창건 - 고려 태조 19년(936년) 왕명으로 전각을 새로 지어 사찰을 확장 - 고려 명종 1년(1171년) 태자의 텟줄을 봉안하고 사찰명을 ‘창기사(昌期寺)’로 변경 - 고려 명종 10년(1180년) 무신 김보협의 난이 일어나자 1182년까지 대법회를 개설 - 1478년(성종 9) 소헌왕비의 탯줄을 봉안하고 사찰명을 ‘성불산 용문사’로 변경 - 임진왜란으로 사찰 소실 - 조선 광해군 원년(1608년)부터 1637년까지 사찰을 보수하고 전각을 다시 지음 - 정조 7년(1783년) 문효세자의 탯줄을 봉안하고 사찰명을 ‘소백산 용문사’로 변경 - 헌종 1년(1835년) 화재로 사찰 전소 - 이듬해부터 사찰을 복원하고 전각을 다시 지음 - 근대화로 새로운 도시가 등장하면서 예전의 명성은 잊혀지고 외딴 지역의 사찰로 위상 추락 * 1989년 동자상 9구 도난

    관련 설화

    고려 태조 왕건이 신라를 정벌하러 남쪽으로 이동 중 소백산 근처를 지나는 중 이 지역 출신인 승려 두운의 명성이 높음을 알고 사찰을 방문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사찰 근처에 다다를 무렵 갑자기 운무가 자욱해서 주변을 전혀 볼 수 없었다. 이때 갑자기 두 마리의 청룡이 나타나 길을 인도하였다. 두운을 만나고 개경으로 돌아간 후 왕건은 사찰을 위해 매년 150석의 쌀을 하사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