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연혁
- 통일신라 경문왕 10년(870년) 승려 두운이 당나라에서 귀국 후 ‘용문사’라는 이름으로 창건 - 고려 태조 19년(936년) 왕명으로 전각을 새로 지어 사찰을 확장 - 고려 명종 1년(1171년) 태자의 텟줄을 봉안하고 사찰명을 ‘창기사(昌期寺)’로 변경 - 고려 명종 10년(1180년) 무신 김보협의 난이 일어나자 1182년까지 대법회를 개설 - 1478년(성종 9) 소헌왕비의 탯줄을 봉안하고 사찰명을 ‘성불산 용문사’로 변경 - 임진왜란으로 사찰 소실 - 조선 광해군 원년(1608년)부터 1637년까지 사찰을 보수하고 전각을 다시 지음 - 정조 7년(1783년) 문효세자의 탯줄을 봉안하고 사찰명을 ‘소백산 용문사’로 변경 - 헌종 1년(1835년) 화재로 사찰 전소 - 이듬해부터 사찰을 복원하고 전각을 다시 지음 - 근대화로 새로운 도시가 등장하면서 예전의 명성은 잊혀지고 외딴 지역의 사찰로 위상 추락 * 1989년 동자상 9구 도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