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연혁
-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 금강산에 머물던 승려 회정이 강화도로 내려와 창건 - 하지만 창건 이후 조선 중기까지 자료는 전해지지 않음 - 조선 순조 12년(1812년)부터 1976년까지 총 일곱차례 전각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
'널리 모든 사람을 받아드리는 문'이라는 의미로 사람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에 응하여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관세음보살의 손길이 모든 사람에 미치는 사찰을 의미
-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 금강산에 머물던 승려 회정이 강화도로 내려와 창건 - 하지만 창건 이후 조선 중기까지 자료는 전해지지 않음 - 조선 순조 12년(1812년)부터 1976년까지 총 일곱차례 전각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
신라시대 강화도에 살던 한 어부가 바다에 그물을 친 후 건져 올렸더니 인형을 닮은 22개의 돌덩이들만 있었다. 실망한 어부는 돌덩이들을 바다로 던지고 다시 그물을 쳤는데 또다시 22개의 돌덩이만 있었고 어부는 다시 바다에 돌덩이들을 던졌다. 그날 밤, 어부의 꿈에 노승이 나타나 '내일 다시 돌덩이들을 건지거든 명산에 잘 봉안해 달라'라 했다. 다음 날 바다에서 또 돌덩이를 건진 어부는 낙가산으로 가져가 굴 안에 단을 만들고 돌덩이를 두었다. 이후 이곳은 보문사 석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