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사(雲水寺)

    산이 높고 물이 풍부한 곳에 위치한 사찰이라는 의미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 5
    모라역 2번출구 옆 148번 버스 -> 운수사 하차 -> 도보 30분(오르막길)
    운수사 웰빙숲 / 사철밀면 / 스파캐슬(온천인증)
    템플스테이 미운영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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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 연혁

    - 가야국 때 '산수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 창건자와 창건연대는 전해지지 않음 - 해 질 무렵 울려퍼지는 종소리가 사상 8경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부산을 대표하는 사찰이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사찰은 전소 - 임진왜란 때 동래성을 함락하기 위해 우회하던 왜군이 운수사를 약탈하는 과정에서 종이 사라짐 - 이후 폐허로 남아있다 조선 인조 25년(1647년) 대웅전을 다시 짓기 시작하여 명맥을 유지하였으며 18세기 운수사로 변경 - 운수사 범종 소리를 되살리기 위해 1974년 범종을 새로 만들었으나 태풍으로 종각이 유실되면서 종만 대웅전으로 옮김

    관련 설화

    운수사가 번창하여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시절, 운수사 주지는 신도가 많은 것을 귀찮아하고 불평을 자주했다고 한다. 하루는 결혼한 사내가 운수사에 들러 주지를 찾아뵙고 며칠간 사찰에 머물고 싶다고 하자 주지는 귀찮아하면서 불평을 했다. 화가 난 사내는 '사찰에 신도가 많이 오면 고맙게 생각하고 중생 제도에 앞장서서 힘을 써야 함에도 신도가 오는 것을 귀찮아해서 되겠습니까?”라고 말하자 주지는 “제발 신도들이 많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사내는 주지에게 신도가 오지 않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하며,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두꺼비 형상을 한 바위가 있는데 그 두꺼비바위의 턱을 쳐버리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주지는 행자승을 보내어 두꺼비바위의 턱을 떼어 내었다. 그 뒤 이상하게도 운수사에 신도들이 찾아오지 않았다. 주지는 처음에는 좋아했으나 계속 신도가 한 명도 오지 않자 사내아이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내아이의 행방은 묘연하고 사찰은 점점 쇠락해지기 시작했다. 당황한 운수사 승려들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 두꺼비바위가 바라보는 쪽은 김해군 상동면에 있는 암자인데, 두꺼비가 거기에서 모이를 주워 먹은 후 변을 운수사에 보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해 상동면의 암자는 크지 못하고 운수사만 날로 번창했는데, 이제 두꺼비의 턱이 없어져 두꺼비가 먹지를 못하므로 변을 볼 수가 없으므로 운수사는 쇠락하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