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연혁
- 통일신라 신문왕 3년(683년) 승려 의상이 ‘응진전’ 지음 - 고려시대 승려 고봉(1350~1428)이 사찰을 수리 및 보수 -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 후 쓴 것으로 추정되는 ’유리보전’ 현판 - 조선의 억불 정책으로 사찰은 명맥만 이어짐 - 1984년 승려 지현이 사찰을 보수하고 전각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
악의 원인이 되는 마음의 번뇌를 지우고 맑고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사찰
- 통일신라 신문왕 3년(683년) 승려 의상이 ‘응진전’ 지음 - 고려시대 승려 고봉(1350~1428)이 사찰을 수리 및 보수 -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 후 쓴 것으로 추정되는 ’유리보전’ 현판 - 조선의 억불 정책으로 사찰은 명맥만 이어짐 - 1984년 승려 지현이 사찰을 보수하고 전각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
승려 원효가 청량사 창건을 위해 승려 의상과 함께 힘을 쏟고 있을 어느 날 절 아랫마을에 내려가게 되었다. 논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논에서 일을 하는 농부를 만났는데 마침 농부가 소를 데리고 논을 갈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소의 뿔이 셋이나 달려 있었다. 하지만 뿔 셋 달린 소는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농부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이때 원효가 농부에게 다가가 이 소를 절에 시주하는 게 어떻겠냐고 권하니 농부는 흔쾌히 이 뿔 셋 달린 소를 절에 시주하겠다고 하였다. 원효가 농부에게 소를 건네받아 절로 돌아왔는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멋대로 날뛰던 소가 신기하게도 절에 온 이후로는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 것이었다. 소는 청량사를 짓는데 필요한 재목이며 여러 가지 물건들을 밤 낮 없이 운반하고는 준공을 하루 남겨 놓고 생을 마쳤는데 이 소는 ‘지장보살’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원효는 이 소를 지금의 삼각 우송 자리에 묻었는데 그곳에서 가지가 셋인 소나무가 자라 후손 사람들이 이 소나무를 ‘삼각우송’이라 하고 이 소의 무덤을 ‘삼각우총’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