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연혁
- 고려 광종 24년(973년) 승려 영현이 오봉산 기슭에 '백암선원' 이라는 이름으로 창건 - 고려 선종 6년(1089년) 이자현이 이곳에 은거하며 산 이름을 '오봉산'에서 '청평산'으로 바꾸고 사찰 이름을 '문수원'으로 변경 - 조선 명종 10년(1555년) 승려 보우가 전각을 짓고 사찰명을 '청평사'로 변경 - 한국전쟁으로 사찰 대부분 소실 - 1977년부터 전각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
청평산 자락에 있는 사찰이라는 의미
- 고려 광종 24년(973년) 승려 영현이 오봉산 기슭에 '백암선원' 이라는 이름으로 창건 - 고려 선종 6년(1089년) 이자현이 이곳에 은거하며 산 이름을 '오봉산'에서 '청평산'으로 바꾸고 사찰 이름을 '문수원'으로 변경 - 조선 명종 10년(1555년) 승려 보우가 전각을 짓고 사찰명을 '청평사'로 변경 - 한국전쟁으로 사찰 대부분 소실 - 1977년부터 전각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
중국 당나라 태종의 딸인 평양공주를 사랑한 청년이 있었으나 일반 평민이 공주를 사랑한다는 소식을 듣자 태종은 청년을 없애라고 지시했다. 청년은 아쉽게 세상을 떠났으나 상사뱀으로 환생하여 공주의 몸에 붙어서 살았다. 당나라 궁궐에서는 공주가 예전같지 않아 여러 치료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효험이 없었다. 공주는 궁궐을 나와 방랑을 하다가 지금의 청평사에 이르게 되었다. 굴에서 하룻밤을 자고 앞 계곡에서 몸을 깨끗이 씻은 후 스님의 옷인 가사를 만들어 청평사 스님에게 올렸으며 그 공덕으로 상사뱀은 공주와 인연을 끊게 되었다. 이후 공주는 당나라 황제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며 당나라는 청평사를 고쳐 짓고 탑을 건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이 때 세운 탑을 '공주탑'이라고 하고 공주가 목욕한 곳을 '공주탕'이라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