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百潭寺)

    백담사(百潭寺)

    대청봉에서 사찰까지 100개의 웅덩이가 있는 사찰

    강원도 인제군 북면 백담로 746
    동서울, 수원 터미널 등 백담사 행 버스 -> 백담사 셔틀버스
    진부령 미술관 / 국립산악박물관 / 조롱박(야채빵&즉석떡볶이) / 척산온천휴양촌(온천인증)
    템플스테이 운영
    무료
    유료

    사찰 연혁

    - 신라 선덕여왕 16년(647년), 승려 자장이 '한계사(寒溪寺)'라는 이름으로 창건 - 화재로 소실 후 남북국시대 신라 원성왕 7년(790), 화재 장소에서 30리 아래에 사찰을 짓고 '운흥사'로 변경 - 화재로 소실 후 고려 성종 6년(987년), 화재 장소에서 북쪽 60리에 사찰을 짓고 '심원사'로 변경 - 화재로 소실 후 조선 세종 16년(1434년), 화재 장소에서 30리 아래에 사찰을 짓고 '선구사'로 변경 - 화재로 소실 후 세종 29년(1447년) 화재 장소에서 서쪽 약 10리에 사찰을 짓고 '영취사'로 변경 - 화재로 소실 후 세조 2년(1457년) 화재 장소에서 위 20리 지점에 사찰을 짓고 '백담사'로 변경 - 화재로 소실 후 영조 51년(1775년) 사찰을 복구하고 '심원사'로 변경 - 정조 7년(1783년) 사찰명을 '백담사'로 변경 - 1915년 화재로 사찰이 전소되었으며 4년 후 사찰을 복원했지만 한국전쟁으로 다시 전소 - 1957년 사찰을 다시 복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음

    관련 설화

    강원도 깊은 산 속에 비금사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사찰이 너무 산 속에 있어 사람들은 이 사찰을 거의 찾지 않았다. 어느날 주지는 강원도 인제에 명당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주지는 명당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그러던 중 좋은 기운이 느껴지는 터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곳은 물과 나무와 산이 어우러진 곳이었다. 주지는 이곳으로 사찰을 옮겨고 사찰 이름을 한계사로 바꿨다. 이후 사찰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다. 어느날 한 노인이 찾아와 주지에게 "이곳의 터는 좋으나 사찰 이름이 좋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 입니다"라고 말했으나 사찰의 이름은 그대로 유지했다. 이후 새로 건물을 지을 때마다 화재로 소실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화재로 고민이 많던 주지는 꿈을 꾸었는데 이름을 바꾸라던 노인이 나타나 "대청봉에서 사찰까지 웅덩이가 몇 개나 되는지 세어 보고 이와 관련된 이름으로 바꾸면 사찰은 번성할 겁니다"라고 알려 주었다. 다음날 주지는 바로 대청봉에서부터 사찰에 이르기까지 웅덩이를 세어 보았고 정확히 100개의 웅덩이가 있다는걸 확인 후 사찰 이름을 '백담사'로 변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