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계사(雙磎寺)

    두(雙) 계곡(磎) 사이에 자리잡은 사찰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길 59
    구례터미널 ‘9-1, 9-2, 9-3’ 승차 -> 쌍계사 입구 하차
    박경리문학관, 하덕마을 갤러리골목 / 소소하당(한옥카페), 악양면(팥칼국수)
    템플스테이 운영
    무료
    무료

    사찰 연혁

    - 통일신라 문성왕 2년(840년) 당나라에서 귀국한 승려 혜소가 ‘옥천사(玉泉寺)’라는 이름으로 창건 및 당나라에서 가져온 차(茶) 종자를 사찰 주변에 심음 - 통일신라 정강왕 때 한 고을에 두 군데의 ‘옥천사’가 있어 혜소가 창건한 ‘옥천사’를 ‘쌍계사’로 변경 - 임진왜란으로 사찰 전소 - 조선 인조 10년(1632년) 승려 벽암이 사찰을 다시 지음 - 한국전쟁 당시 하동전투 등 지리산 주변 민,관,군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합동 천도재를 봉행 - 1975년부터 사찰을 보수하고 전각을 새로 짓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 1997년 화엄경변상도, 신중도 등 쌍계사 문화재 도난

    관련 설화

    승려 혜능(慧能)을 존경한 승려 삼법은 714년(성덕왕 13)에 혜능이 입적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탄했다. 이후 삼법은 혜능의 설법집인 '법보단경(法寶壇經)'을 읽게 되었는데, 자신이 죽은 뒤에 동방으로부터 두 명의 보살이 다녀가서 불법을 널리 알릴 것이라는 말을 남겨놓았다. 이에 삼법은 721년(성덕왕 20)에 직접 당나라에 가서 혜능의 정상(頂相-정수리뼈)을 승려 대비 및 주변의 도움으로 얻었다.  이후 삼법은 대비는 함께 신라로 돌아왔다. 어느날 삼법은 한 노승이 강주(康州) 지리산 아래 눈 속에 칡꽃이 핀 곳에 정상을 봉안하라는 꿈을 꾸었다. 삼법과 대비는 노승의 말대로 지리산을 찾았다. 그런데 당시는 한겨울이었던 탓에 눈이 많이 내려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호랑이 한 쌍이 나타나 길을 인도하기 시작했다. 삼법과 대비가 함께 그 뒤를 따라가 보니 큰 석문 안에 터가 있었는데, 칡꽃이 만발한 곳이었다. 이에 두 승려는 이곳에 정상을 안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