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연혁
- 신라 진평왕 때 승려 원효가 창건했다 전해지나 정확한 창건연대는 전해지지 않음 - 조선 예종 원년(1469년) 세종의 능을 여주로 이장한 후 세종의 원혼을 비는 사찰로 지정 - 한국전쟁으로 사찰 대부분 전소 - 1980년대 중반 사찰 보수 및 전각을 다시 지음 - 2001년부터 1만여 평의 대지에 잔디와 나무를 심는 환경친화적 불사를 이어가고 있음
사나운 용마(말+용 머리)를 신비한(신령 신) 굴레를(굴레 륵) 씌워 제압한 승려 나옹이 창건한 사찰
- 신라 진평왕 때 승려 원효가 창건했다 전해지나 정확한 창건연대는 전해지지 않음 - 조선 예종 원년(1469년) 세종의 능을 여주로 이장한 후 세종의 원혼을 비는 사찰로 지정 - 한국전쟁으로 사찰 대부분 전소 - 1980년대 중반 사찰 보수 및 전각을 다시 지음 - 2001년부터 1만여 평의 대지에 잔디와 나무를 심는 환경친화적 불사를 이어가고 있음
원래 신륵사 법당 앞에는 연못이 있었으나 법당 앞이 허전하여 연못을 메꾸고 누각을 지으려 했다. 연못을 메우기 전 신륵사 주지의 꿈에 아홉 명의 백발노인이 나타나 연못 메우는 공사를 며칠만 참아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고 사라졌다. 꿈을 깬 후 찜찜한 느낌이 든 신륵사 주지는 연못 메우는 공사를 며칠간 중지시켰다. 꿈을 꾼 며칠 후 낮에 갑자기 비가 내리고 사방이 어두워지더니 연못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 이후 연못을 메우고 '구룡루'라는 누각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