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연혁
- 정확한 창건연대는 전해지지 않으나 고려 이전 창건한 것으로 추측 - 임진왜란 당시 승려 휴정(서산대사)이 승군을 거느리고 주둔했 - 조선 선조 37년(1604년) 휴정 입적 후 그가 입었던 의복인 '가사'와 밥그릇인 '발우' 를 이곳에 안치한 후 사찰을 크게 확장 - 대한제국 고종 36년(1899년) 화재로 사찰 대부분 소실 - 이듬해부터 전각들을 다시 짓기 오늘에 이르고 있음
본래 이름은 '대둔사(大芚寺)'로 새싹(둔)이 크게 움트는 사찰이라는 의미, 근대 초기 사찰이 크게 흥하라는 의미로 '대흥사'로 변경
- 정확한 창건연대는 전해지지 않으나 고려 이전 창건한 것으로 추측 - 임진왜란 당시 승려 휴정(서산대사)이 승군을 거느리고 주둔했 - 조선 선조 37년(1604년) 휴정 입적 후 그가 입었던 의복인 '가사'와 밥그릇인 '발우' 를 이곳에 안치한 후 사찰을 크게 확장 - 대한제국 고종 36년(1899년) 화재로 사찰 대부분 소실 - 이듬해부터 전각들을 다시 짓기 오늘에 이르고 있음
대둔사 천불전을 짓고 위해 고용한 목수가 있었다. 그런데 목수는 몇 달 동안 다른 일은 하지 않고 나무못만 깎고 있었다. 이를 지켜본 대둔사 승려는 목수의 행동이 못마땅해 목수 몰래 못 두 개를 숨겼다. 며칠 후 승려는 장비를 모두 챙겨 짐을 싸고 있는 목수를 보게 되었고 그에게 다가가 왜 짐을 싸고 있는지 물었다. 이에 목수는 '법당을 짓기 위해 필요한 못을 개수에 맞게 다 깎았는데 못 두 개가 부족합니다. 제 정성이 부족해서 법당을 지을 자격이 없어 집으로 돌아가려는 짐을 싸는 중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승려는 자신이 못을 숨겼다며 사과하고 못을 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