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연혁
- 남북국시대 신라 문무왕 8년(668년) 승려 의상이 창건 - 조선 전기까지 전해지는 관련 자료는 없음 - 조선 숙종 32년(1706년) 사찰을 보수하고 전각을 다시 지어 명맥을 이음 - 한국전쟁으로 사찰 대부분 소실 - 1966년부터 전각을 재건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사찰의 부흥을 위해 사찰 앞 거북 바위 등에 구멍을 뚫어 혈을 끊었지만 오히려 사찰은 퇴락하여 거북 바위의 혈을 다시 잇는다는 뜻에서 구룡(九龍)에서 구룡(龜龍)으로 이름을 변경
- 남북국시대 신라 문무왕 8년(668년) 승려 의상이 창건 - 조선 전기까지 전해지는 관련 자료는 없음 - 조선 숙종 32년(1706년) 사찰을 보수하고 전각을 다시 지어 명맥을 이음 - 한국전쟁으로 사찰 대부분 소실 - 1966년부터 전각을 재건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원래 대웅전 자리에는 연못이 있었으니 그 곳에는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의상은 치악산을 향해 가던 중 사방을 살펴보니 이곳은 사찰을 세울만한 곳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연못을 메워 사찰을 지으려고 용들과 도술시합을 했다. 용들이 먼저 솟구쳐 오르자 뇌성벽력이 치고 산들이 모두 물에 잠겨버렸다. 용들이 흐뭇해하며 주변을 살피니, 의상은 비로봉과 천지봉에 줄을 걸어 배를 묶은 후 그 안에서 자고 있었다. 다음은 의상이 움직였다. 부적을 한 장 그려 연못에 넣자 연못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고 용들이 뜨거워 날뛰었다. 그때 놀란 용 여덟 마리가 사찰 앞산을 여덟조각 내면서 동해로 도망치고, 한 마리는 눈이 멀어 함께 도망가지 못하고 연못에 머물렀다. 이후 연못을 메우고 그 자리에 구룡사(九龍寺)라는 사찰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