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연혁
-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년) 승려 아도가 '진종사'라는 이름으로 창건 - 고려시대부터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시찰로 중히 여겼으며 조선시대 숙종 4년(1678년),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사찰로 지정되어 왕실의 보호를 받았음 - 1866년 강화도를 침략한 프랑스군이 불상과 법전 등 다수의 문화재를 약탈 - 1909년 조선왕조실록을 서울로 옮겼으며 전각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
고려 충렬왕 8년(1282년), 왕비인 정화공주가 진종사에 불교 경전과 옥등을 시주했으며 이에 '불법의 등불을 전한다'라는 의미로 전등사로 이름을 변경
-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년) 승려 아도가 '진종사'라는 이름으로 창건 - 고려시대부터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시찰로 중히 여겼으며 조선시대 숙종 4년(1678년),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사찰로 지정되어 왕실의 보호를 받았음 - 1866년 강화도를 침략한 프랑스군이 불상과 법전 등 다수의 문화재를 약탈 - 1909년 조선왕조실록을 서울로 옮겼으며 전각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
전등사 대웅전을 수리하는데 참여한 목수가 있었다. 그는 대웅전을 지으면서 전등사 근처 마을에 있는 주막에 자주 들렸으며 결국 주모를 사모하게 되었다. 그는 주모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매달 나오는 품삯을 모두 그녀에게 맡겼고 결국 그녀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하지만 대웅전 공사가 끝나갈 무렵 주모는 맡겨 놓은 돈을 모두 가지고 도망갔다. 이에 괴로워하던 목수는 사후 무거운 지붕을 받치는 고통을 받으라는 의미로 대웅전 지붕 추녀 밑 네 모퉁이에 주모의 조각을 집어넣었다. 이 조각들은 지금도 대웅전 지붕을 두 손으로 받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