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연혁
- 고구려에서 온 승려 아도가 창건했다는 설이 유력 - 신라 선덕여왕 14년(645년) 이후 사세 확장 - 임진왜란으로 사찰 대부분 전소 - 조선 광해군 2년(1610년) 사찰을 복구했지만 근근히 명맥만 유지 - 1958년 대대적으로 전각을 보수하고 법당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
직지인심 견성성불(수행을 통해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면 내가 곧 부처요 그 마음이 곧 불심)의 앞 두 글자를 딴 것으로 추측
- 고구려에서 온 승려 아도가 창건했다는 설이 유력 - 신라 선덕여왕 14년(645년) 이후 사세 확장 - 임진왜란으로 사찰 대부분 전소 - 조선 광해군 2년(1610년) 사찰을 복구했지만 근근히 명맥만 유지 - 1958년 대대적으로 전각을 보수하고 법당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
한 아이가 직지사에 놀러 왔다가 천왕문 앞 은행나무 아래에서 낮잠이 들었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대에 대웅전에서 참선을 하고 있었던 주지 신묵도 깜빡 잠이 들었다. 신묵은 꿈에 황룡이 나타나 천왕문 앞 은행나무를 감싸고 있는 기이한 광경을 보고 잠에서 깨어 그 자리로 가보니 한 아이가 돌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양친을 여의고 괴로워하던 소년은 “천하에 고아된 몸이 과거가 무엇이며 출가가 무엇이겠습니까?” 하고 출가를 소원하니 신묵은 이 소년이 자신의 꿈에 본 황룡임을 직감하고 아이를 거두어 제자로 삼았다. 이 소년이 바로 사명당 유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