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연혁
- 신라 진평왕 24년(602년)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승려 지명이 창건 - 통일신라 성덕왕 22년(723년) 오층석탑 조성 - 고려 고종 원년(1214년) 승려 원진이 전각 4동을 새로 짓고 종 등을 구비 - 임진왜란으로 사찰 소실 - 조선 숙종 3년(1677년) 승려 도인이 전각을 다시 지음 - 1916년 승려 설산장욱이 개인 사재로 전당과 탑을 다시 지음 - 1975년 전각에 새롭게 단청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보물 같은 여덟 면 거울(팔면보경)을 땅에 묻고 사찰을 지은 데서 유래
- 신라 진평왕 24년(602년)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승려 지명이 창건 - 통일신라 성덕왕 22년(723년) 오층석탑 조성 - 고려 고종 원년(1214년) 승려 원진이 전각 4동을 새로 짓고 종 등을 구비 - 임진왜란으로 사찰 소실 - 조선 숙종 3년(1677년) 승려 도인이 전각을 다시 지음 - 1916년 승려 설산장욱이 개인 사재로 전당과 탑을 다시 지음 - 1975년 전각에 새롭게 단청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신라 승려 지명이 중국 진나라에 유학을 하면서 한 도인에게 팔면보경을 전수받았다. 도인은 지명에게 팔면보경을 주면서, 동해안의 명산 명당에 보경을 묻으면 왜구 및 이웃나라의 침입을 막을 수 있고 삼국을 통일할 수 있다는 말을 전했다. 이에 지명은 신라 진평왕에게 도인의 이야기를 전했고 함께 사찰터를 찾으러 떠났다. 두 사람은 동해안 포항을 거쳐 북쪽 해안을 올라가던 중 오색구름을 보게 되었고 오색구름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산 아래에 평탄한 곳에 큰 못이 있었고 명당이라 할만했다. 그래서 그곳의 못을 메우고 팔면보경을 묻은 다음 사찰을 창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