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연혁
- 신라 문무왕 15년(675년) 승려 원효가 '견강사'라는 이름으로 창건 - 원래 사찰 자리에서는 낙동강이 보였지만 15세기 지금의 자리로 이전 후 사찰 이름을 '선암사'로 변경 - 조선 성종 14년(1483년) 사찰을 확장했으나 임진왜란으로 사찰은 전소 - 이후 폐허로 남아있다 조선 숙종 7년(1681년) 법당을 다시 지었으며 고종 3년(1866년) 사찰을 확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화랑들이 심신을 수련했던 바위 '신선암' 아래에 있는 사찰이라는 의미
- 신라 문무왕 15년(675년) 승려 원효가 '견강사'라는 이름으로 창건 - 원래 사찰 자리에서는 낙동강이 보였지만 15세기 지금의 자리로 이전 후 사찰 이름을 '선암사'로 변경 - 조선 성종 14년(1483년) 사찰을 확장했으나 임진왜란으로 사찰은 전소 - 이후 폐허로 남아있다 조선 숙종 7년(1681년) 법당을 다시 지었으며 고종 3년(1866년) 사찰을 확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어느 날 왜선 한 척이 부산 동평현 부근 바다에 표류하고 있었다. 이에 동평 현령은 그들을 구출해 주고 후하게 대접했다. 며칠 뒤 왜구의 우두머리가 찾아와서 '배에 좋은 술이 있으니 감사의 표시로 한 잔 올리고 싶습니다'라고 간곡히 청했다.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현령이 아무 의심 없이 그들을 따라 배까지 갔더니 갑자기 현령을 납치하여 일본으로 출발해 버렸다. 붙잡혀간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잠든 현령이 꿈속에서 한 스님을 만났다. '스님, 저는 좋은 뜻으로 왜인들을 구출해 주었는데 이렇게 억울하게 갇힌 몸이 됐습니다. 제발 저를 구해주십시오'라고 빌었다. 이에 그 스님이 '나는 선암사 주지입니다. 현령은 죄를 짓지 않았으니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바닷가로 나갑시다'라며 앞장섰다. 바닷가엔 작은 배 한 척이 있었다. 현령이 배 위에 오르자 갑자기 스님이 바다 한가운데로 배를 밀었다. 현령이 깜짝 놀라 깨어보니 바로 동평현 자기 집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