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려이자 승병장인 사명당을 기리는 사당으로 표충사(祠, 사당)로 불렸으나 이후 사찰을 의미하는 사(寺, 절)로 변경
경남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밀양역&밀양시외버스터미널 표충사행 버스 -> 표충사 하차
의열기념관 / 아리랑시장 보리밥 뷔페 / 밀양 아리나호텔 온천(온천인증)
템플스테이 운영
무료
유료
사찰 연혁
- 신라 무열왕 원년(654년) 승려 원효가 죽림정사(竹園精寺)라는 이름으로 창건
-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흥덕왕 4년 (829년) 인도에서 온 스님 황면이 '영정사(靈井寺)'로 변경
- 임진왜란 이후 승병장이자 승려인 사명당의 제사를 모신 후 사람들은 '표충사(表忠寺)'로 부르기 시작
- 조선 헌종 5년(1839) 사명당의 법손인 승려 천유가 영축산 백하암에 있던 사명당의 사당을 이곳에 옮긴 후 사당을 사찰에서 관리하면서 '사당 사(祠)'가 '절 사(寺)'로 변경
- 1926년 화재로 응진전을 제외한 모든 전각 소실
- 이후 사찰 복구 후 전각을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
* 승려 일연이 이곳에서 삼국유사를 완성했다고 전해지며 독립운동 단체, 조선의열단 단장인 약산 김원봉이 1년 정도 머물렀다고 알려짐
관련 설화
인도에서 온 승려 황면은 재악산 죽원정사에서 수도하고 있던 어느 날 어떤 기이한 사람이 사찰에 나타나'자신은 몹쓸 병에 걸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치료 방법을 물었다. 이에 황면은 손가락으로 사찰 옆에 흐르는 샘물을 가리키며 '이 샘물의 이름은 영정(靈井)으로 이 물을 마시면 병이 나을 것이오'라고 말했다. 이 사람은 황면이 알려준 대로 샘물을 마셨고 차츰 효험이 있었다.
이 사람은 마을로 내려가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니 사람들이 기뻐하면서 황면이 기거하고 있는 사찰에 자신들의 재물을 시주했다. 황면은 사람들이 시주한 재물로 사찰을 크게 확장하고 사찰 이름을 '영정사'로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