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연혁
- 고려 말 승려 나옹이 '해운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전해지나 관련 자료는 전해지지 않음 - 조선 시대 영도의 옛 이름인 '절영도'는 말을 키우던 곳으로 이 시기 사찰은 폐사찰 된 것으로 짐작 - 1800년대 승려 김선주가 폐사찰 내 토굴에 '해운암'이라는 암자를 짓고 수행하면서 명맥을 이음 - 1921년 대웅전을 다시 짓기 시작하여 이후 몇 차례 전각을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
사찰 주변 계곡의 물이 좋다 하여 '복천'이라 불리던 데서 유래
- 고려 말 승려 나옹이 '해운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전해지나 관련 자료는 전해지지 않음 - 조선 시대 영도의 옛 이름인 '절영도'는 말을 키우던 곳으로 이 시기 사찰은 폐사찰 된 것으로 짐작 - 1800년대 승려 김선주가 폐사찰 내 토굴에 '해운암'이라는 암자를 짓고 수행하면서 명맥을 이음 - 1921년 대웅전을 다시 짓기 시작하여 이후 몇 차례 전각을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
'해운암'을 '복천암'으로 바꾼 승려 완호는 불교 포교를 목적으로 그린 그림인 불화를 그리는 승려를 양성하기 위해 '불화소'를 짓고 제자들에게 불화를 가르쳤다. 완호가 활동했던 시기는 일제강점기로 불화에 일제가 강요하는 일본 연호를 일절 사용하지 않았으며 일본인이 선호하던 서양화법을 불화에 적용하지 않고 기형적인 화법이 유행하여 화파 간의 특징도 사라지고 서로 얽혀서 전통성을 잃어가던 시대에 완호는 우리나라의 전통성을 고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