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연혁
-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 승려 자장이 창건 - 고려 충렬왕 33년(1307년) 화재로 전소 - 사찰을 복구했지만 조선 순조 33년(1833년) 화재로 전소 - 조선 헌종 10년(1844년) 사찰을 복구 - 한국전쟁 당시 국군에 의해 사찰 전소(북한군의 주둔을 막기 위함) - 1964년 이후 단계적으로 복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달의 정기를 품고 있는 사찰이라는 의미로 달의 정기는 팔각구층석탑에 봉안된 부처의 진신사리를 뜻함
-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 승려 자장이 창건 - 고려 충렬왕 33년(1307년) 화재로 전소 - 사찰을 복구했지만 조선 순조 33년(1833년) 화재로 전소 - 조선 헌종 10년(1844년) 사찰을 복구 - 한국전쟁 당시 국군에 의해 사찰 전소(북한군의 주둔을 막기 위함) - 1964년 이후 단계적으로 복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고려 말 오대산 미륵암에서 수행중이던 승려 나옹은 매일 월정사로 내려가 불전에 콩비지를 공양했다. 눈이 수북이 내린 어느 겨울날, 이날도 나옹은 비지를 들고 눈길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소나무 가지 위에 있던 눈이 비지 그릇에 떨어졌다. 순간 나옹은 소나무를 향해 “소나무야, 너는 이 산에 살면서 언제나 크나큰 은혜를 입고 있거늘, 어찌 감히 네 마음대로 움직여 불전에 올릴 공양물을 버리게 하느냐!”라며 소리쳤다. 마침 나옹의 꾸짖음을 들은 오대산 산신령은 “소나무야, 너희는 불전에 올릴 공양물을 망쳤으니 이 산에서 함께 살 자격이 없다. 멀리 떠나거라. 그리고 이제부터는 전나무 아홉 그루로 하여금 이 산의 주인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소나무들을 오대산에서 쫓아냈다. 이후 오대산은 소나무 대신 전나무들이 주인 노릇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