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사(三千寺)

    한때 3천여 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여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산25-2
    구파발역 3번 출구 7723번(10분 간격) -> 하나고/삼천사/진관사입구 하차 -> 약 300m 직진
    북한산온천 '비젠'(온천인증) / 은평한옥마을 / 북한산 둘레길
    템플스테이 미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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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 연혁

    - 신라 문무왕 원년(661년) 승려 원효가 '삼천(三川)사'라는 이름으로 창건 - 한때 규모가 큰 사찰이었으며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집결지로 활용되었으나 결국 임진왜란으로 전소 - 시간이 지나 승려 화상이 사찰 터를 발견하고 이곳에 삼천사를 재건하지 않고 고려시대 조각된 마애여래입상 주변에 사찰을 새로 짓고 삼천(千)사로 변경 - 이후 사세를 유지하였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해 사찰은 폐허가 됨 - 1960년대 승려 진영이 마애여래입상 주변을 정비하고 전각을 다시 짓기 시작하였으며 1970년대 승려 성운을 시작으로 약 50여년 간 신도들의 시주 등으로 사찰을 확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 옛 삼천사 터에서 대형 돌그릇(石槽)과 동종(銅鐘), 고려 전반 법상종을 주도했던 승려 법경(法鏡)의 비명(碑銘) 등 600여점의 문화재가 발굴되었으며 이 중 동종은 보물로 지정

    관련 설화

    1968년 북한의 남파 무장공작원이 청와대를 습격하려 했던 1.21사태 이후 북한산 주변은 군사구역으로 지정되어 민간인은 북한산 주변을 방문할 수 없었다. 심지어 삼천사를 방문하는 삼천사 신도들조차 초소에서 신분 확인 후 방문할 수 있었다. 이후 북한산 주변이 철조망으로 둘러싸이고 군인들의 훈련이 많아지기 시작하자 해마다 삼천사 주변에 있는 유격훈련장에서는 훈련 중 사고가 자주 일어났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삼천사 주지는 장병들의 희생을 안타깝게 여겨 더 이상 인명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뜻으로 유격훈련장이 보이는 장소(삼천사 입구 옆)에 지장보살입상을 세웠는데 이후 신기하게도 인명사고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