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法住寺)

    부처의 법(불경)이 머무르는 사찰이라는 의미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405
    동서울, 대전 터미널 속리산행 버스 -> 속리산 하차
    태화루(꼬막짬뽕)
    템플스테이 운영
    무료
    유료

    사찰 연혁

    - 신라 진흥왕 14년(553년) 당나라에서 유학 후 귀국한 승려 의신이 창건 - 남북국시대 신라 혜공왕 12년(776년), 승려 진표에 의해 금동미륵대불을 조성 - 고려시대 승려가 약 3만 명이 될 정도로 규모가 컸음 -
임진왜란으로 사찰 대부분 소실 - 인조 2년(1624)에 승려 벽암, 각성이 '팔상전'을 다시 지음 - 조선 고종 9년(1872년), 대원군이 당백전 화폐(경복궁 재건을 위해 발행한 화폐)를 주조하기 위해 금동미륵대불 몰수 - 이후 시멘트로 미륵대불을 다시 조성

    관련 설화

    금산사에서 수도하던 승려 진표가 어떤 일로 보은에 왔을 때 들판에서 밭갈이하던 소들이 갑자기 일을 멈추고 모두 엎드려 진표를 맞이했다. 기이한 광경을 본 농부들도 일을 멈추고 진표에게 달려가서 인사를 한 후 소들이 이렇게 하는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진표는 '이 소들이 겉으로는 어리석으나 속으로는 현명하여 이곳이 불법을 알릴만한 곳임을 알리기 위해 우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농부들은 자신들이 소보다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곧바로 낫으로 자신들의 머리카락을 자른 후 진표의 제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