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일암(向日庵)

    남해에서 떠오르는 일출이 아름다운 곳에 위치한 암자

    여수시 돌산읍 향일암로 60 종무소
    여수엑스포 '110' 승차 -> 임포(향일암) 하차
    쫑포몬당 골목길 / 갓김치
    템플스테이 운영
    무료
    유료

    사찰 연혁

    - 신라 선덕여왕 13년(644년) 승려 원효가 ‘원통암(圓通庵)’이란 이름으로 창건 - 고려 광종 9년(950년) 승려 윤필이 산의 형세가 금 거북이가 경전을 등에 업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과 같다고 여겨 '금오암(金鰲菴)'으로 변경 - 조선 임진왜란 당시 승려들로 조직된 군대의 본거지 역할 및 이순신 장군을 도와 왜적과 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나 화재로 사찰 전소 - 조선 숙종 41년(1715년) 승려 인묵이 사찰을 재건하고 ‘향일암(向日庵)’으로 변경. - 조선 헌종 13년(1849년) 여섯 가지의 경계심을 경계하고 수행하는 암자라는 의미의 ’책육암(策六庵)’으로 변경  - 한국전쟁으로 사찰 소실 - 1961년 법당을 다시 짓고 사찰명을 ‘향일암’으로 변경 - 2009년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대웅전과 종각 전소

    관련 설화

    금오산 정상에서 향일암을 바라보면 바닷속으로 잠수해 들어가고 있는 거북이의 모습 같다고 한다. 이에 풍수지리사들은 금오산에 구멍을 뚫는 경우 거북 혈을 막는 것과 같아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고 일러 왔다. 시간이 흘러 1970년대 이후 어느 날, 향일암 주지는 향일암을 방문객들이 많아지자 안전을 위해 난간을 설치하기로 했다. 작업자들이 땅을 뚫는 작업을 하던 중 갑자기 굴착기가 부서지게 되었고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고 여겨 작업을 중단했다. 그런데 갑자기 주지의 한쪽 다리가 마비되는 등 건강이 점차 악화되기 시작했다. 향일암 승려들과 주민들은 향일암에 구멍을 뚫어 거북 혈을 손상시킨 것이 향일암 주지의 갑작스론 건강 악화의 원인이라 생각, 구멍을 메웠더니 향일암 주지의 건강이 호전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