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연혁
- 남북국시대 신라 경문왕의 명으로 창건했으나 정확한 창건연대는 전해지지 않음 - 창건 이후 오랫동안 사찰은 폐사됨 - 사찰을 조선 정종 원년(1399년) 전각을 다시 지었으며 세조가 이곳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음 - 이후 사찰의 명맥은 꾸준히 이어졌으나 한국전쟁으로 사찰이 전소 - 한동안 폐허와 마찬가지였으나 1984년부터 1994년까지 전각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
'나뭇잎이 떨어지는 공허한 숲(空)'이었으나 번번이 화재 등으로 사찰이 소실되어 잡초만 남은 사찰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귀인 공 '公'으로 변경
- 남북국시대 신라 경문왕의 명으로 창건했으나 정확한 창건연대는 전해지지 않음 - 창건 이후 오랫동안 사찰은 폐사됨 - 사찰을 조선 정종 원년(1399년) 전각을 다시 지었으며 세조가 이곳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음 - 이후 사찰의 명맥은 꾸준히 이어졌으나 한국전쟁으로 사찰이 전소 - 한동안 폐허와 마찬가지였으나 1984년부터 1994년까지 전각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
도(道)와 덕(德)이 높았던 승려 자정은 전국을 유랑하며 사람들에게 설법을 전파하여 사람들에게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었다. 이에 신라 경문왕이 임금의 스승인 국사로 자정을 임명하자 자정은 이를 사양하고 낙영산으로 들어가 초막을 짓고 살았다. 이 소식을 알게 된 임금은 자정이 머무는 곳에 사찰을 지으라 명하고 '공림(空林)'이라는 이름의 현판을 내렸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