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천사(興天寺)

    조선 태조의 두 번째 아내인 신덕황후 강씨의 명복을 빌고 온 세상을 흥하게 하겠다는 의미로 명명

    서울시 성북구 돈암동 595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6번 출구 앞 성북22번 마을버스 -> 돈암일신해피트리아파트 하차
    정릉 및 정릉 주변 골목길 탐방
    템플스테이 미운영
    무료
    무료

    사찰 연혁

    - 조선 태조의 두 번째 아내인 신덕왕후 강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선 태조 5년(1396년) 창건 - 하지만 계모인 신덕왕후를 거의 증오하다시피 했던 태조의 아들, 이방원은 즉위한 뒤 사찰에 딸린 전답과 노비의 수를 줄이고 절의 건물을 뜯어서 명나라 사신들의 객사를 짓는데 사용했으나 사찰 자체를 없애진 않음 - 1437년(세종 19년) 사찰을 고쳐 짓고 선종(수행을 통해 스스로 깨달음)의 인사 및 시험 등을 담당하는 '선종도회소' 역할을 담당 - 연산군과 중종 때 화재로 전소되었다. - 선조 2년(1569년) 왕명으로 도성 밖으로 옮긴 정릉 주변에 '신흥사'라는 이름으로 사찰을 다시 지음 - 정조 18년(1794년) 사찰을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고종 때 대방(법당+접대장소)과 요사채(승려 숙소)를 지은 뒤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관련 설화

    조선 태조는 두 번째 아내인 신덕왕후 강씨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곁에 두고 싶어, 사대문 안에 능을 짓지 않는 관례를 어기고 궁궐 옆에 능을 만들고 명복을 빌 사찰을 지었다. 지금의 영국대사관 자리에 능을 조성하고 정릉이라 했고 지금의 서울시의회 자리에 흥천사를 세웠다. 태조의 그리움은 흥천사 완공 후 왕후의 능에 재를 올리는 종소리가 나야 침소에 들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태종이 재위에 오른 뒤 계모를 몹시 싫어한 태종은 신덕왕후를 첩으로 강등하고 정릉을 도성 밖으로 내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