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연혁
- 조선 태조의 두 번째 아내인 신덕왕후 강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선 태조 5년(1396년) 창건 - 하지만 계모인 신덕왕후를 거의 증오하다시피 했던 태조의 아들, 이방원은 즉위한 뒤 사찰에 딸린 전답과 노비의 수를 줄이고 절의 건물을 뜯어서 명나라 사신들의 객사를 짓는데 사용했으나 사찰 자체를 없애진 않음 - 1437년(세종 19년) 사찰을 고쳐 짓고 선종(수행을 통해 스스로 깨달음)의 인사 및 시험 등을 담당하는 '선종도회소' 역할을 담당 - 연산군과 중종 때 화재로 전소되었다. - 선조 2년(1569년) 왕명으로 도성 밖으로 옮긴 정릉 주변에 '신흥사'라는 이름으로 사찰을 다시 지음 - 정조 18년(1794년) 사찰을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고종 때 대방(법당+접대장소)과 요사채(승려 숙소)를 지은 뒤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